비 오는 날, 산이 내게 가르쳐준 것 — 내보내는 용기

비가 조용히 내리던 날이었다. 숲은 젖은 초록빛으로 더욱 짙어졌고, 그 위로 뿌연 안개가 피어올랐다. 마치 산이 숨을 쉬는 듯했다. 조용히.

유심히 바라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. 이 운무, 어쩌면 나무들이 내뿜는 숨결이 아닐까. 밤새 비를 맞은 나무들이, 자신에게 필요 없는 수분을 조용히 공기 중으로 내보내는 모습. 넘치면 안 된다는 걸 아는 듯, 스스로 조절하며 균형을 지키는 자연의 지혜였다.

산이 안개를 토해내듯

비가 그친 후 이런 운무는 자주 생긴다. 땅과 나무들이 머금었던 수분이 천천히, 그러나 꾸준히 증발하면서 공기 중으로 스며든다. 그 수증기가 차가운 공기와 만나 응결되면, 산 위를 타고 흐르는 운무가 된다. 흔히 ‘증기 안개’라 불리는 이 현상은, 특히 나무와 풀이 많은 숲에서 더 자주 볼 수 있다.

비를 온전히 받아들이고, 그 중 필요한 것만 품은 뒤 나머지는 다시 내어주는 자연. 참 지혜롭다.

자연처럼 살아간다는 것

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, 나무가 꼭 사람 같았다. 너무 많은 것을 품지 않으려는 태도, 넘치기 전에 흘려보내는 방식. 자신을 해칠 만큼 무언가를 안고 있지 않으려는 그 본능적인 선택이 부러웠다.

우리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. 마음속에 감정이나 생각이 쌓이고 쌓이면 결국 병이 된다. 억지로 참고 안고 가는 것이 어른스러운 줄 알았는데, 진짜 어른스러움은 어쩌면 ‘적당히 흘려보낼 줄 아는 것’인지도 모르겠다.

말로 풀어내고, 눈물로 씻어내고, 글로 내려놓고, 바람 속에 던져버리는 용기. 그래야 마음이 썩지 않는다. 그래야 나도 숨을 쉴 수 있다.

운무를 뿜어내던 그 산처럼,

살다 보면 채워야 할 때도 있지만, 비운 뒤에 더 단단해지는 때도 있다. 그날의 산은 아무 말 없이 그렇게 가르쳐 주었다.
스스로를 지키기 위해, 우리는 때때로 ‘내보내야’ 한다는 것을.